신록의 계절이다. 뜨거운 햇빛을 받은 식물은 푸릇푸릇한 생명력을 발산한다. 비로서 여름이 왔음을 실감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도 새롭게 재생하길 원한다. 이때 도심을 벗어나 한가롭게 산림욕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녹색 샤워(Green Shower)라 불리는 산림욕은 일상에 지친 심신에 활력을 가져다 줄 것이다. 숲의 내음이 절정인 여름, 국립수목원을 찾았다.
| 경기도 포천에 자리잡은 국립수목원은 그 넓이만 해도 대략 350만 평으로 국내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침엽수원, 활엽수원, 관목원, 화목원, 습지식물원, 수생식물원 등 15개의 전문 수목원으로 나누어 조성되어 있다. 평일에는 하루 방문 인원을 5,000명으로 제한하여, 방문객들이 여유롭게 산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얼마 전까지 광릉수목원이라 불렸던 이곳은 예전에 왕릉이 위치한 곳이어서 그 누구도 경작을 할 수 없었고 삼림 훼손 또한 불가했다. 그 이후 1468년 이곳이 왕릉 숲으로 지정된 뒤부터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국립수목원에서 최고의 절경을 자랑하는 육림호는 호수 위에 길게 가지를 늘어뜨린 나무와 물 위에 비친 하늘빛이 조화를 이뤄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육림호 근처에는 아담한 퍼골라가 있어 방문객들이 경치를 감상하며 잠시 쉬어가기에 좋다. 육림호를 한바뀌 돌아 제법 긴 길을 걷다 보면 산림박물관에 도착한다. 박물관 전면 벽에는 백제시대 산수문전을 현대 감각으로 재현해내어 음각한 돌벽화가 설치되어 있다. 산림박물관은 5개의 전시실로 나뉘어 있으며 식물의 원색표본(압화), 임업도구 등 약 1만여 점의 다양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숲을 보고 느끼는 것 뿐만 아니라 숲에 대해 알게 되는 곳이다. 아이들과 함께 현장학습을 즐기고, 스스로 자연의 소중함과 필요성을 깨닫게 하기에 적합한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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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에 들어서면 끝없이 펼쳐진 나무를 뒤로하고 오랜 세월 동안 물이 흐르다 고인 습지원이 한눈에 보인다. 습지원은 물가에서 잘 자라는 식물들을 옮겨 놓은 곳이다. 물가 근처에 창포나, 부처꽃, 머위, 붓꽃 등 약 200종의 식물이 심어져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습지원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숲생태관찰로에 들어서게 된다. 숲생태관찰로는 최고의 산림욕장이다. 나무판자 길로 이어진 곳을 서서히 걷다 보면 깊은 숲 속을 거니는 기분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울창한 나무숲 안에 들어서면 마치 해질녘처럼, 햇빛이 잘 들지 않아 오히려 서늘할 정도다. 산책길 좌우에 빽빽이 들어서 있는 전나무들이 온통 하늘을 가렸기 때문이다. 녹푸른 나뭇잎에 반사된 햇빛은 산책로를 은은하게 비추고, 여기저기 들려오는 새소리에 일상에 쫓겨 조급했던 마음이 잠시 고요해진다. 제법 구불구불하고 긴 거리의 산책로를 천천히 걷기만 해도 기분이 상쾌해진다. 삼림욕이 몸에 좋은 이유는 나무에서 방출되는 피톤치드라는 특수 물질 때문이다. 피톤치드는 스트레스 완화효과와 항균효과, 진정작용 뿐만 아니라 면역기능 또한 증대시키는 효과를 낸다. 따라서 걷기만 해도 몸이 완쾌되는, 이른바 자연치료가 아닐 수 없다.
박물관을 빠져 나와 산책하는 동안, 흰 꽃이 활짝 핀 산딸나무가 눈에 띈다. 사실 십자모양으로 생긴 잎들은 꽃이 아니라 가운데 작은 녹색의 꽃을 보호하기 위한 화피다. 그 밖에 다양한 종의 꽃이 모여있는 이곳은, 말 그대로 화목원이라 불린다. 매화원을 비롯하여 철쭉원, 명자원, 조팝나무원, 매자나무원, 작약원, 목련원 등 수많은 종들이 또 하나의 작은 관찰원을 이루고 있는데 5, 6월이 꽃나무가 가장 활짝 필 때라 여름에 만개한 꽃을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다양한 모양과 색감을 지닌 꽃에 집중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수십 종 꽃 이름을 하나 하나 훑다 보면, 곧이어 시원한 물내음이 느껴진다. 넓다란 호수 위 연한 분홍색을 띈 홍련과 백련, 노랑어리연 등이 피어 있고, 사뭇 우아한 느낌마저 자아내고 있는 이곳은 수생식물원이다. 물 위에 빽빽하게 채운 둥근 연꽃 잎사귀가 햇빛을 받아 연녹색을 띄고 물살에 따라 조심스레 흔들린다. 연꽃 연못 주변에는 부처풀, 물옥잠 등 물풀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주변 나무들과 함께 멋스러운 경치를 이루고 있다. |
수목원을 나오는 길에 종종걸음으로 뛰어가는 다람쥐 한 마리가 눈에 띈다. 아이들 몇 명이 신기한 듯 손으로 가르키고 있는 것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난다. 산림박물관 근처, 어른 둘이 감싸기도 힘든 굵고 높은 나무 아래 작은 벤치가 떠오른다. 그곳에 앉으면 마치 도심과 내가 아무 상관 없는 양 느껴졌다. 수목원을 뒤로 하자 모처럼 더위도 피로와 함께 두고 온 것만 같다. 짙은 숲 속에서 온 몸으로 자연을 느끼고 아낌없이 느낄 수 있는 것. 이것은 축복이다. 어느새 온 몸은 진초록 내음으로 가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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