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테크놀로지] 종이로 컴퓨터·로봇을 만든다

  • 책장을 넘기면 장면에 맞는 음악이 책에서 흘러나온다. 거리의 종이 광고판에 손을 대면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물건이 가득 찬 종이 상자는 ‘이제 그만 넣으세요’라고 투정을 부린다. 최근 종이와 컴퓨터가 결합한 ‘똑똑한’ 종이들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컴퓨터가 들어간 종이는 우주를 탐사하는 종이 로봇 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 ▲ 스웨덴 연구자들은 종이 컴퓨터로 만든 광고판을 개발했다. 광고판의 말풍선에 손을 대면 종이가 떨리면서 음성이 나오게 된다. /스웨덴 미드스웨덴대 제공

  • ◆무게 감지하는 종이상자

    미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미디어랩의 마르첼로 코엘료(Coelho) 박사는 지난달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국제 유비쿼터스 컴퓨팅 학회’에서 이른바 ‘종이 기반 컴퓨터(Pulp-based computing)’ 기술을 소개했다. 이 기술이 적용된 종이 상자는 내용물의 무게를 감지할 수 있으며, 책장을 넘기면 그에 맞는 음성과 음악을 들려준다.

    연구팀은 전통적인 종이 제조 공정에 전자회로를 이루는 부품을 결합시켰다. 일단 종이를 이룰 펄프(pulp)층을 만들고 그 위에 전기가 흐르는 전도성 잉크로 전자회로를 그려냈다. 전도성 잉크에는 은(銀) 입자가 들어 있어 전기가 흐를 수 있다. 회로는 다시 음성이나 음악 정보를 만들어낼 컴퓨터 칩에 연결됐다. 그 위에 다시 펄프 층을 입히면 종이 컴퓨터가 완성된다.

    종이 컴퓨터는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도성 잉크를 나선 모양으로 그려놓으면 스피커나 촉각센서가 될 수 있다. 전도성 잉크에 전류가 흐르면 펄프에 들어있는 섬유질인 셀룰로오스가 떨리게 된다. 전기를 진동으로 바꿔주는 이른바 ‘압전(壓電)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셀룰로오스의 떨림은 스피커 역할을 하게 된다. 아직은 제대로 된 음성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신호음이나 간단한 멜로디는 충분히 가능하다. 책장을 넘기면 그 페이지에 맞는 음악이 흐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촉각센서는 노트북에서 손가락으로 커서를 옮기게 하는 터치 패드(touch pad)의 원리와 같다. 종이를 만지거나 종이에 가까이 손가락을 갖다 대면 전도성 잉크에 흐르는 전류의 흐름이 바뀐다. 이를 통해 손가락이 다가오는지, 아니면 특정 페이지로 넘어가는지를 감지할 수 있다. 또 물건을 담는 종이 상자에 같은 방법을 적용하면, 내용물의 무게를 감지해 물건을 더 담을지, 그만 담을지를 알려줄 수도 있을 것으로 연구팀은 기대하고 있다.
  • ▲ 종이를 만들 때 전도성 잉크로 전자회로를 만들고 음성신호 등을 내보내는 칩을 연결한다. 종이 내부에 전자회로가 들어있어 마음대로 구부릴 수 있다. /미 MIT 제공
  • ◆손대면 대답하면 종이 광고판

    종이 컴퓨터는 광고판에도 이용할 수 있다. 스웨덴의 미드 스웨덴대 굴릭슨(Gulliksson) 박사팀은 사람과 교감할 수 있는 종이 광고판을 개발했다. 광고판에 그려진 만화의 말풍선에 손을 가져가면 실제 음성이 흘러나오는 식이다. 음반 광고판에 손을 대면 음반에 수록된 음악을 미리 들을 수도 있다.

    굴릭슨 박사팀은 3㎝ 두께의 골판지에 전도성 잉크로 전자회로를 그린 얇은 종이를 붙였다. 그리고 다시 그 위에 광고 그림이 인쇄된 종이를 붙였다. 가운데 종이 층은 전원과 컴퓨터 칩에 연결됐다. MIT팀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광고판에 손을 대면 전도성 잉크가 주변의 종이를 떨게 해 음성이나 음악이 흘러나오게 한다.

    사람이 손을 대면 음성이 나오는 광고판은 이미 여러 형태가 개발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 한 번 만들면 내용물을 바꾸기가 어려웠다. 반면 종이 컴퓨터 광고판은 전자회로가 그려진 종이와 광고그림이 있는 종이층만 바꿔 바르면 늘 새로운 광고를 보여줄 수 있다.

  • ◆날아다니는 종이 로봇

    국내에서는 같은 원리를 이용해 전기가 흐르면 나비처럼 날개를 펄럭이며 날 수 있는 ‘종이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인하대 기계공학과 김재환 교수는 셀룰로오스 함량이 높은 종이에 전기를 흘리면 마치 근육처럼 떨린다는 사실을 발견해 미항공우주국(NASA)과 함께 잠자리나 벌레처럼 움직이는 종이 로봇을 개발 중이다. 김 교수는 2003년부터 과학기술부 창의적연구진흥사업의 ‘생체모방 종이 작동기 사업단’을 이끌고 있다.

    종이 로봇에는 따로 배터리를 달 필요가 없다. 종이 로봇의 날개에 전파를 전기로 바꾸는 회로와 전파를 감지하는 안테나만 붙이면 된다. 외부에서 종이 로봇에 전파를 쏘면 종이 로봇의 안테나가 이를 수신해 전자회로로 전력을 생산해낸다. 따라서 배터리가 없이도 스스로 날거나 기어다닐 수 있다. 자연 무게가 가벼워진다.

    종이 로봇은 싼 값으로 대량제작이 가능하기 때문에 실패 가능성이 높고 위험한 우주실험이나 군사실험에 적합하다. 작고 가벼워 초정밀 탐지로봇, 정찰로봇으로도 쓰일 수 있다. NASA는 값싼 종이 탐사선을 대량으로 화성이나 토성에 보내는 방안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 종이를 만들 때 전도성 잉크로 전기회로를 그려넣어 책장을 넘기면 신호음이 나거나 빛을 내고, 내용물의 무게를 감지하는 종이상자가 가능해진다. /미 MIT 제공= 이영완 기자


  • 스웨덴 미드스웨덴대 연구팀은 종이에 전도성 잉크로 전기회로를 만들어 넣은 광고판을 개발했다. 광고판에 있는 만화 말 풍선에 손을 갖다대면 해당 음성이 실제로 흘러나온다. 종이는 음성신호를 증폭시키는 스피커 역할도 한다. /스웨덴 미드스웨덴대 제공= 이영완 기자

이영완 기자 ywlee@chosun.com
입력 : 2007.09.26 23:22 / 수정 : 2007.09.27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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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단풍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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